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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22년 대통령 후보 최재형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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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형 전 고등법원 판사, 전 사법연수원장, 전 가정 법원장, 전 감사원장, 1956,9.2 - ) 세상에는 맑고 따듯한 기운을 가진 사람이 있다.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그렇고 대한민국의 최재형이 그렇다. 국가나 민족의 명운은 어떤 지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위기의 상황에서는 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과 한반도는 구한말 이래로 아주 중요한 위기의 순간에 서있다.  올바른 지도자의 선택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할 절대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서있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196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는 가운데 나타난 분배의 불균형과 같은 여러 문제가 누적되어 국민간의 분열이 그 어느때 보다도 극심한 가운데 있다.   현재 정권을 잡은 이들은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민심을 분열시키고 지역간 계층간의 갈등을 부추겨서 권력을 유지하는데 급급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다. 온 국민은 위기의 순간에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맑고 깨끗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 흐트러진 민심을 바로 잡고  선진화된 국가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책임있는 경영을 위임 하여야 할 것이다. 역사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 남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들은 이제 더 흘릴 눈물도 없고 이제 까지 피땀흘려 쌓아 온 모든것을 허망하게 잃을 수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 대통령은 임기를 가진 고위직 공무원이다. 군주 국가의 왕이 아니다." 전직 현직 대통령의 계속되는 실패는 대통령직을 무소불위의 자리로 착각을 하고 법과 원칙을 지키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는데에서 부터 기인한다. 나는 최재형을 지지한다.  내가 최재형을...

Harlem Public Library 과다한 경쟁적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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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West 124 th  Street, the Harlem Branch of the New York Public Library) Thomas Sowell (1930-  )은 Stanford 대학 Hoover Institute의 경제학자이다.  Sowell은 North Carolina의 흑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태어나자 마자 친적에게 입양이 되어 살다가 1930년대 당시 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주하는 흑인 이주 바람을 타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Thomas 집안에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위에 살던 Eddi Mapp이란 사람을 알게 되고, Eddi는 9살의 Thomas를 Harlem에 있는 Public Library에 데려가 책을 찾고 빌리는 법 등을 가르쳐 준다. 당시 Harlem Public Library에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책과 미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이 있었지만, Harlem지역에 사는 흑인 중 도서관을 활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유독 유대인들만이 도서관의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Public Libarary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또 당시 Harlem의 공교육의 수준은 지금보다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현재의 도심 빈민 지역의 공 교육은 80년전의 Harlem만도 못하다고 하며 "이렇게 형편없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로 부터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고 한탄을 한다. Sowell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한국전에 사진병으로 참전을 한다. 의무 기간을 마치고 돌아와  워싱턴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야간에 Howard College에서 공부하던 중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여 교수들의 추천으로 하바드대학에 입학...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Margaret Thatcher (1925.10.12 - 2013.4.8), British Prime Minister (1979-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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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garet Thatcher, 사진 Getty Image/인터넷 켑쳐) Margaret Thatcher (마가렛 대처)는 지도자의 신념과 자질이 국가의 흥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대처는 신분 사회이자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작은 식료품점을 하는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부친으로 부터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고 또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이나 비난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장차 영국을 뒤 흔들 위대한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가정에서 부터 양성하게 된다. Oxford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지만 보수당 청년위원회 활동을 하였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4세의 나이로 비록 낙선을 하였지만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를 하여 일찌감치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의회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하는가운데 결혼을 하고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959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성한다. 그후 내각과 정치인을 오가며 미래를 준비 하게 된다. 교육부 장관 재임시에는 정부 재정 긴축을 위해 7-11사이의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우유 급식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려 언론으로 부터 "우유 도둑"이란 명칭을 얻게 되고 동시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여성"이란 비야낭을 듣기도 한다. 대처는 남성 중심적인 정치판에서 1970년대 초 "여자가 영국에서 수상이 되는 일은 내 생애에 절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지만 1975년 보수당 당수가 되고 1979년 영국수상으로 취임을 하게 된다. 수상으로 취임할 당시 영 국의 최대 현안은 추락하는 경제였다.  영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로 어떤 정치인도 손을 대기 싫어 하는 막강하고 오만한 탄광 노조와 한판 승부를 벌여 노조를 와해 시...

Claude Levi-Strauss (1908.11.28 - 2009.10.30), "슬픈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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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Praemium Erasmianum Foundation 홈페이지) Claude Levi-Strauss 는 지구가 둥글다라고 말한 Copernicus에 비견되는 인류학자이다. Levi-Strauss 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하고 Secondary education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35년 프랑스 정부에서 공모한 문화 사절단에 막차로 지원하여 방문 교수 자격으로 브라질 Sao Paulo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 브라질에 체류하는 4년의 기간동안 사절단의 일원이자 인류학 교수인 부인과 함께 아마존 원주민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실제 아마존 원주민과 함께 산 기간은 몇 날에 불과하였지만 지속적인 탐방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다. 여행중 부인이 눈병을 얻어 연구 수행이 어려워지자 인류학적 연구의 사명을 떠안게 된다. 전문적인 고등 교육을 받은 유럽인이 아마존 원주민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며 연구한 학자는 이전에 없었다고 한다. Levi-Strauss 는 인류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정식으로 인류학 교육을 받은 부인으로 부터 간접 교육을 받아 오히려 인류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도그마에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질에서의 4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소르본 대학에서 잠시 근무를 하던 중 1941나치와 불란서의 비시정부의 (Vichy France)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한다.  미국은 1930-40년대에 걸쳐 유럽의 박해 받는 지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특히 뉴욕은 구대륙과 신대륙의 다양한 분야의 지성의 만남이라는 실험장이 마련된다. 뉴욕에 자리를 잡은 Levi-Strauss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Roman Jacobson이란 언어학자를 만나 Structural Languages에 대해 배우고 그밖에 많...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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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War Memorial, Westborough, MA) 모든 정치적인 결정의 마지막에는 결국 무고한 일반 시민이 그 대가를 몸으로 지불하게 되어 있다. 국가의 운영을 위임 맡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결정을 내리지만, 값은 일반 시민이 치룬다. 작은 결정들이 쌓여 거지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도 한다. 그 결정이 자의든 타의든 전쟁인 경우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국가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추모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죽은 병사들에게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랄뿐일 것이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도시에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보게 된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추모하고 대접하는 가를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순국 선열들을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으로 추모를 하고 있는가?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은 수 많은 미국인을 포함한 우방의 친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추모 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의 삶과 경제적인 번영이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덕택이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는 가운데 나타난 분배의 불균형과 같은 여러 폐해로 국민이 분열이 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경제가 파탄이 나서 거지가 되어 온 국민이 길거리에 나가 앉거나 심한 경우 나라를 잃고 나서 노예 생활을 할 때 알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열린 사회의 적들 John Dewey (1859-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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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터넷 켑쳐) 현재 미국 공교육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지난 한세기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원에 공교육 저변에 깔린 정신과 철학이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런면에서 미국 교육의 근간을 세운 교육 철학 사상가인  John Dewey 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인생이란 긴 과정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 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의 학교의 교육 목표는 어떠한가? 한국의 학부모들의 입을 빌리면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부이며 학교에서는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숫자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한다. 정규 교육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학생들은 방과후 사교육을 통하여 암기 위주의 입시 준비로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놀라운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더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학생들은 부모의 지시에 순종하며 잘하든 못하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교육이 급격한 경제 성장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미국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입학은 고교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 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졸업은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받았을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대학 졸업장만으로 평생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니다. 하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Ronald Reagan (1911.2.6 - 200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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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40 대 대통령 1981-1989,  사진 USA Today ) 밝고 기운찬 사람은 주변을 환하게 변화 시킨다. 레이건은 지치고 어리둥절해 있는 국민들을 추스르고 때론 유머로 때론 힘든 결단으로 미국을 이끌어 나간 지도자다. 그는 미국과 미국시민을 사랑한 애국자 였다. 각료 회의에서 시작할때 몇 마디만 하고 회의 내내 잠을 잔다고 레이건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레이건은 이런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 오래 더 들어봐야 이해를 못하니 각료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중요한 사안을 일임한다고 대답하였다. 민주당은 레이건을 이혼한 경력이 있고 이름도 없는 대학을 나온 2류 배우 출신이라고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프레임을 씌어 집요하게 공격을 했다.  레이건은 소위 동부의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즐비한 민주당의 엘리트들의 눈에는 얼뜨기 배우에 불과 하였다. 레이건은 이러한 조롱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의연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레이건은 압도적인 표차로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지미 카터를 누루고 69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을 하게 되고 74세의 나이에 재선에 성공한다. 레이건 집권 말기 국민의 지지도가 63%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초당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준다. 하바드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골수 민주당원인 친구 George는  "우리는 레이건을 과소 평가했다. 그가 8년간 California주지사를 하며 국가를 운영할 만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도 간과 했다. 레이건 재임중 세금 감면 정책과 탈규제 정책은 미국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가 Russia와의 오랜 냉전을 끝내고 베를린 장벽을 결국 무너 지게 한 역할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라고 민주당원으로서는 최고의 점수를 준다.  하지만 George는 "감세 정책이 경제를 부흥시키고 많...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Angela Merkel (1954.7.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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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터넷 캡쳐) 세상에는 맑고 밝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따듯하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생각이 반듯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목사인 아버지로 부터는 기독교 신앙과 봉사정신을, 라틴어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로 부터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가정에서 배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정에서 부터 쌓아온 것이다. 물리학을 연구하던 젊은 앙겔라 메르켈을 정치의 길로 인도한 당시의 지도자는 메르켈의 어떤 모습을 보았을까? 과학을 공부한 사람 특유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태도를 보았을까? 메르켈은 정부의 여러 요직을 거치는 훈련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의 안정, 번영과 행복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권력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게 된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메르켈의 위대함은 낮에는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과 국가에 헌신하고, 일과 후에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동등한 시민으로서 자신과 가정을 충실하게 지킨데 있다고 본다. 메르켈은 "권력은 부패한다. 완전한 권력은 완전히 부패한다"라는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르켈이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랫동안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부모로 부터의 교육, 타고난 개인적 인성과 메르켈을 둘러싼 사람들의 높은 시민 정신의 산물이 아니었겠나 생각한다. 메르켈의 성공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메르켈이 역사속에서 다시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독일 시민들, 세계의 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Nelson Mandela (1918.7.18 - 20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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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대통령이 된 후 27년 수감 생활중 17년을 보낸 South Africa의 Robben Island 에 있는 감옥을 다시 방문하여 감회에 잠겨 있는 넬슨 만델라. 사진: Getty Image. LA times 사진 캡쳐) 넬슨 만델라의 위대함은 그가 한나라의 대통령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매일 반복되는 중 노동을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정신적 유대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노래도 함께 부를 수가 없었다. 매일 돌을 깨는 노역과 동일한 일상이 27년간 계속된다. 음악을 들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사람에 의하여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온 갖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는 자신을 27년 이란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던 부당한 사회의 제도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출감 후 남아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그는 복수의 심정으로 백인이나 정치적으로 이견을 달리 했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과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비 인간적으로 대우 하였던 간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만델라가 지냈던 감옥의 내부. 사진; 위키피디아 캡쳐) 어떤 일을 이루자면 여러가지 도구와 환경이 필요하다. 큰 사상의 탄생에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만이 백인 우월주의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으나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만델라는 문제 해결 수단으로 "화해와 연대 (reconciliation and unity)" 를 선택한다.   나는 거리를 거닐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넬슨 만델라를 생각하며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이 평범한 자유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아메리칸 드림과 이종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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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Art Museum. Chong 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and Culture,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 있는 미국 최대의 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Asian Art Museum 의 정면 벽에는 Chong 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and Culture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미국에는 큰 돈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을 건물에 부치는 전통이 있다. 이종문 회장은 1994-95년 두해에 걸쳐 재정상 위기에 빠진 아시아 박물관에 1600만불을 기증하여 현재의 위치에 박물관을 세우는데 종자돈을 댔다. 미국의 공공 건물에 이름을 새긴 최초의 아시안이며 한국인이란 기록을 세웠다. 사람이 큰 일을 하자면 우선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을 다시 부여 잡고 일어서게 하는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문 회장은(1928 -  ) 국립 중앙도서관 사서관과 연세대 강사등을 지내다가 1975년 47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으로 돈을 번다. 더 큰 돈을 벌려면 전자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54세의 나이에 실리콘밸리에 뛰어 들어 사업을 벌이다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렇게 이국땅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고 기사 회생을 한다. 마침내 사업에 성공을 하여 얻은 부를 마치 이런 날을 오기를 기다려 왔던 사람처럼 지체없이 사회에 기부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종문 회장의 말을 나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존경을 받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하다고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돈만 쫓다 망한 사람들이 많다. 기업인은 재물을 추구하기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