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 Levi-Strauss (1908.11.28 - 2009.10.30), "슬픈 열대"

 

               (사진 출처 Praemium Erasmianum Foundation 홈페이지)


Claude Levi-Strauss 는 지구가 둥글다라고 말한 Copernicus에 비견되는 인류학자이다.


Levi-Strauss 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하고 Secondary education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35년 프랑스 정부에서 공모한 문화 사절단에 막차로 지원하여 방문 교수 자격으로 브라질 Sao Paulo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

브라질에 체류하는 4년의 기간동안 사절단의 일원이자 인류학 교수인 부인과 함께 아마존 원주민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실제 아마존 원주민과 함께 산 기간은 몇 날에 불과하였지만 지속적인 탐방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다. 여행중 부인이 눈병을 얻어 연구 수행이 어려워지자 인류학적 연구의 사명을 떠안게 된다.


전문적인 고등 교육을 받은 유럽인이 아마존 원주민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며 연구한 학자는 이전에 없었다고 한다. Levi-Strauss 는 인류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정식으로 인류학 교육을 받은 부인으로 부터 간접 교육을 받아 오히려 인류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도그마에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질에서의 4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소르본 대학에서 잠시 근무를 하던 중 1941나치와 불란서의 비시정부의 (Vichy France)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한다. 


미국은 1930-40년대에 걸쳐 유럽의 박해 받는 지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특히 뉴욕은 구대륙과 신대륙의 다양한 분야의 지성의 만남이라는 실험장이 마련된다. 뉴욕에 자리를 잡은 Levi-Strauss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Roman Jacobson이란 언어학자를 만나 Structural Languages에 대해 배우고 그밖에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통해 인류학에 구조주의 기법을 도입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8년 다시 파리로 돌아온 Levi-Strauss는 그간의 연구를 정리하여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55년 유명한 "슬픈 열대 (Trites Tropiques)"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아 인류학계뿐 아니라 유럽의 지성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다.


"원시 부족민의 생활도 그 내부의 구조는 발달된 서구 문명의 그것과 모양만 다를 뿐이지 같다"고 Levi-Strauss는 말한다.


지금 들으면 아주 평범한 이야기에 불과 하지만 당시 유럽인에게는 충격적이었다. 17-19세기에 걸쳐서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 인도, 아시아, 북남미 대륙등 전세계에 걸쳐 식민지를 건설하며 살육과 약탈을 자행할 때 유럽인들은 비유럽인을 야만족에 다름이 없다고 생각을 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생각할때 Levi-Strauss의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창조물로 귀중하며 "문명에 차이가 있을뿐이지 우열은 없다" 라고 말한다.


슬픈 열대가 출간된지 어느덧 70년이 다 되어 간다. 서로 다른 문명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열어준 인문학적인 각성을 통해 세상은 더 살기 좋고 아름답게 되었는가?  아직도 세상 여기저기에서 문명이 발달한 나라에서 조차 인종간의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다. 하물며 같은 인종끼리도 문화, 종교, 재산, 출신 지역의 차이에 따른 차별과 반목이 계속 된다.


나와 너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일까?


우리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좁은 땅떵어리 안에서 출신으로, 지역으로, 계급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국에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이주한 이웃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우리와 동등하게 인격적으로 대접하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인종간의 갈등의 해결 방안은 간단하지 않다. 먼저는 인문학적인 각성이 필요할 것이지만 더 나아가서 갈등을 완화 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성숙한 사회적 경제적 제도를 고안해 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을 한다.

어쩌면 갈등의 근원은 경제적인 이해 관계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에서 아마존지역의 원주민의 삶을 연구하는 젊은 시절. 사진 인터넷 켑쳐)


                                                                     YHK






Comments

  1. "문화간에는 우열의 등급을 매길 수 없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주장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종차별, 계층차별, 성차별, 연령차별 등 온갖 차별을 거부하는 단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개인간의 차이는 개인의 책임이라기 보다는 개인들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차이로 인한 차별은 부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지요. 한국사회에 만연한 학벌에서 비롯된 차별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안정적인 가정에 자란 아이들이 더 나은 조건을 갖춘 교육기관에 진입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므로 학벌의 차이도 개인의 책임으로 보기 어려운 것이지요. 레비스트로스가 원래는 사회학자였는데 인류학자인 부인의 영향으로 역사적인 인류학자가 된 배경도 무척 흥미롭습니다. 중요한 교훈은 세상은 끝없이 변하기 때문에 항상 열린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아야 한다는 점이겠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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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크게 보면 의미없는 차별들이 참 많은거같아요.
    단지 기준을 어디에 두었냐는것 뿐인데...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각각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바라봐주면 세상이 좀 살기편해지겠죠?
    그러면 결국엔 자신이 편안해질거구요. 지금처럼 힘든시기 서로 격려하며 잘 넘겼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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