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from May, 2021

BTS를 모르신다고요? 냅두세요.

Image
                                    (네이버 포스트에서 캡쳐) “ 낄낄낄 .. 재밌다 ..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도 , 한국 출신의  BTS 를 처음 들어 본다면 , 특히 10 대 딸을 가진 아버지는 딸과 좋게 지내려면 BTS 를 이제라도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낄낄낄 ”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 몇 해 전 첫눈 오는 뉴잉글랜드의  아름다운  겨울 밤 퇴근 길에 차 안에서 틀은 음악 방송에서 진행자가 한 멘트다 .  미국에서 공영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한국 노래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  노래를 들으면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듣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에 오자마자 서울에 사는 절친에게 카톡을 했다 . 나 : 너 BTS 아니 ? BTS 가 무슨 말이니 ? 친구 : 방탄소년단의 약자지 . 나 : 이름은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아 . 공영라디오에서 한국 그룹이 노래하는 것을 듣고 많이 놀랐다 . 친구 : 우리 나이에는 좀 그런데, 젊은 친구들 특히 10 대,  20 대 여성 팬이 많다고 해 .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미국 아무개 교수를 서울로 강의 초청을 하였는데 , 아빠가 서울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틴에이저 딸이 환성을 지르며 좋아했데.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해서 딸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고 하더라 . 나 :  아빠가  유명 교수로 서울에 초청 강연을 가게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 친구 : 그건 전혀 아니지 . 십대 아이들은 초청강연 그런데에 전혀 관심이 없고 , BTS 의 고향에 아빠가 간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한 것이지 . 딸 친구들은 그런 아버지를 가진 딸과 같은 반 급우라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러워 모두가 환성을 지르며 기뻐했다고 해 . 딸 하고 말도 안하고 좀 그랬었는데 엄청 사이가 좋아 졌다고 해. 나 : 그렇구나 .    그냥 있을 수가 없어 유튜브를 통해 BTS 의 공연을 찾아 보았다 . 이것은 2 억뷰 , 저것은 10 억뷰 . 우아  정말 대

김환기 화백 (1913.2.27 - 1974.7.25)

Image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허다한 고생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금과 같이 변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떠밀리듯 고국을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고 , 새로운 세상에서 큰 꿈을 펼쳐 보고자 떠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 김환기씨는 젊어서 남들이 다 부러워 하는 대학의 교수를 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여러번의 성공적인 전시회도 개최 하였고 초대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을 하였으니 여러면에서 남 부럽지 않게 성공을 한 사람이다 . 하지만 그 당시 젊은 예술가가 꿈을 펼치기에는 한국 사회는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열악한 환경 이었을 것이다 . 재능있는 예술가로서  현실에 안주 하기 보다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세계의 문화의 중심에서 인정 받고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이 있었을 것이다 .   젊어서 그리고 파리에서 작업을 하던 시절에는 한국의 여인, 달 ,  매화 ,  항아리 등을소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는 노력을 하였다 . (고 故  이건희 회장의 소장품으로 삼성유족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여 세상에 알려진 "여인들과 항아리")   1963년 에 세계 예술 문화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겨지는 시기에 록펠러 재단의 후원에 힘 입어 뉴욕에 입성을 하여 거대한 문명과 매일 대면하는 자유를 얻었으나, 현실은 차고 그 댓가는 혹독 하였을 것이다 . 뉴욕으로 이주하여 생활고에 시달리며 고향인 신안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친구와 벗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캔버스에 점을 찍었다고 한다 .  (우주) 김환기씨의 작품을 보며 간절한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 지며 소망과 소망으로 연결된 인연은 시간과 장소를 넘어 영원히 소멸하지 않으며 죽어서도 끊어지지 않고 영속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가지게 된다.                                                                           YHK 김환기씨의 글을 나눈다 . 봄내 신문지에 그리던 중에서 나를 발견하다

미국서 오셨어요?

Image
             (2017년 10월 남해의 한 식당. 멸치 쌈밥 정식) 오래 전에 재미교포사회에서 유행하던 우수개가 있다 . 60 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의사 내외가 70 이 되어갈 즈음 “ 여보 은퇴하면 서울 가서 살아요 .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고 아름다운 자연도 구경하고 ..” 아내의 간청에 “ 그럼  한달이라도 서울 가서 한번 살아 봅시다 ”. 휴가를 내고 서울을 방문하여 친구로 부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좋은 먹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다 . 의사 부인 : 어머 , 저 굴비 좀 봐 , 참 먹음직 스럽네 , 이게  영광 굴비인가 ? 이거 한두룸에 얼마에요 ? 매장 점원 :  70 만원이요 . 의사 부인 :  70 만원이요 ? 그럼 700 불 … 아 .. 예 .. 굴비 10 마리에 700 불은 아무래도 너무 비싸서 안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려 정육부에 갔다 . 노트북 보다 약간 큰  크기의 한우 갈비 한 세트가 먹음직 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 와 맛있게 생겼네 . 이건 얼만가 ? 가격표를 보니 40 만원 . 아 400 불 . 의사부인 : 여보 , 아무래도 미국에서 그냥 살아야 겠어요 . 우리네 형편으로는 굴비도 한우 갈비도 맘대로 못 사먹겠네요 . 남편 : 그러면 그렇게 해요 …   몇년 전에 오랫만에 서울을 다녀 온 친구와 식사를 했다 . 서울 갈 때마다 공기가 매년 점점 더 나빠지는 것 말고는 많이 발전하고 매번 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 그런데 서울가서 식당에 가면 금방 미국에서 온 줄 알아 본다고 한다 . 억양이 조금 이상해서 그런가 했더니 , 그건 아니고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했더니 “ 미국서 오셨어요 ?” 라고 물어 보더란 것이다 .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턴가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 주는 밥공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 한 공기를 더 주문을 하면 돈을 더 받는 곳도 있고 그냥 주는 곳도 있다 .  옛날에는 없어서 못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서울 사람들이 밥을 예전

우리의 소원은 통일

Image
  (통일 전망대에서 2021년 4월 촬영)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하였다 . 2 주간의 격리 기간을 마치고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동해안에 있는 통일 전망대를 갔다 . 전망대에 올라서니 멀리 북한땅도 보이고 해금강 한구석도 보였다 . 가슴이 뭉클해져서 사진 한 장을 찍어 “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이라는 문자와 함께 카톡으로 친지들에게 보냈다 . 전날 동해에 도착하자마자 보낸 안부인사에는 다들 반갑다는 회신과 함께 "좋겠다" "부럽다" "동해 사진 찍어 보내라" " 좋은 공기 많이 즐겨라" 등등 환영 일색이였는데 , 이번에는 그 많은 친지중 답신을 하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 다들 바뻐서 그런가 ? 서울서 며칠간 시간을 보내고 조카 가족과 여행을 하며 조카에게 물어 봤다 . 나 : 내가 보낸 우리의 소원 통일 전망대 사진에 왜 아무런 회신을 안했니 ? 조카 : ㅋㅋ 나 : 사진 보냈는데 단 한 사람도 회신을 안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조카 : ㅋㅋ 나 : 우짜 그렇지 ? 조카 :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니까 그렇죠 . 나 : 아니 뭐라고 ? 통일이 소원이 아니라고 ? 너는 학교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 꿈에도 소원은 통일 …“ 노래도 안 배웠니 ? 조카 : 외국에서 오래 사셔서 잘 모르셔서 그러신데요 , 요즘 사람들 통일 이야기 꺼내면 화내고 그런 사람도 있어요 . 나 : 화를 낸다고 ? 조카 : 그렇죠 .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정부에서는 통일 가지고 국민들 이용만 하고 개폼만 잡으니 어느 국민이 좋아해요 . 통일 이야기 아무도 하기 싫어 해요 . 젊은 사람들은 특히 더 그래요. 젊은 사람들 취직도 못해서 미쳐 죽을 지경인데 통일 되면 그 많은 돈은 결국 젊은 사람이 부담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나 : 아 그렇구나 . 나의 부친과 처가댁은 평안도 출신으로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온 실향민이다 . 부친과 장인 어른은

해운대 달맞이 공원

Image
   (2019년 10월 찍음) 한국은 아름답다 . 한국인인 나의 눈에는 특별한 감정이 섞여 어딜 가나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 부모의 눈에 어떤 자식도 예쁘게 보이는 것처럼 ,  내 나라는  있는 그대로의 수려한 모습에 더해 어릴적 부모로 부터 받은 사랑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꿈과 소망이 투영되어 더욱 아름답게 각인이 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사실 자연은 세상 어디를 가나 그 나름대로 아름답다 . 여행을 하거나 살다보면 세상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곳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단지 자신의 고향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외국에 나가 살더라도 친절한 환대와 사랑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고향에 온 듯하다고 표현을 한다 . 고향은 단순이 외형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사랑과 꿈에 대한 그리움이다 . 고향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 떠난 사람이라도 가슴에 새겨진 아름다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다만  여기저기 지워지지 않는 눈물자죽이 박혀 있을 뿐이다.  자연은 그대로가 아름답지만 사람의 손이 더해져서 더 아름답게 되기도 하고 모습을 잃기도 한다 . 도시의 모습은 계획 도시를 제외하고는 동시대 여러 사람들의 합의와 필요에 의해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 한국에 살 적에는 잘 몰랐는데 외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특별히 아름답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 내게는 부산과 한려수도를 포한한 남해안이 그렇다 . 해운대와 달맞이 공원은 편안한 기분을 주어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들르곤 하였다 . 어느 해인가 달맞이 공원에 높은 건물이 들어섰다 .  달맞이  공원  너머로 푸른 하늘이 구름과 달을 담고 있던 열린 공간이 사라지고 대신 커다란 돌기둥이 하늘과 땅을 가로질러 막고 있었다 . 달맞이 공원이 주는 열린 아름다움을 값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 세상에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이 소중한 것이 있다 . 살면서 안타까운 것은 값을 계산 할 줄 모르는 사람들과 눈 앞에 이익에만 눈이 먼 사람들에 의해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

Marianee Stoger (1934.4.24 - ) Margaritha Pissarek (1935.6.9 - )

Image
소록도에서 한센병환자를 돌보며 40여년간 간호사로 봉사한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과 경외감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른다. 그들은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는 짧은 계명을 가슴에 안고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평생을 우리들에게 상대방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아픈 사람을 사랑으로 안아주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2005년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편지 한통을 남겨 놓고 40여년전 가져왔던 가방을 들고 오스트리아로 돌아 갔다는 고국의 기사를 읽고 이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60년대의 한국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당시 한센병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시선이 어떠하였는지 잘 기억할 것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평생에 걸친 헌신을 생각할 때 인간은 다른사람의 사랑과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거저 받은 깊은 사랑을 어떻게 갚아 나갈 것인가.         (마가렛 과 마리안느)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70이 되어 "더는 봉사를 하기 힘든 나이가 되었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가 싫어" 소록도를  조용히  떠나며  남기고 간 편지를 인용한다.  “ …. 이 편지를 보는 당신에게 하늘만큼 감사합니다 . 부족한 외국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주셨습니다 . 같이 지내면서 우리의 부족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 ”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소록도를 그리워 할까? 고향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마리안과 마가레트는 지금도 소록도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한다고 한다 .                                                                                                           

이종욱 박사 (1945.4.12 - 2006.5.22)

Image
행동하는 사상가, WHO 사무 총장 (2003-2006), 의사 2003년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던 이종욱 박사가 대한민국 최초로 UN산하의 WHO의 수장으로 선발이 되었다는 사실은 세상 사람에게는 행운이요 축복이었다. 국가의 지원이 없이 순전한 개인의 노력과 헌신으로 한국인 최초로 국제 기구의 수장으로 오른것만으로도 믿고 본 받을 만한 위인이 부족한 한국인에게는 크고 기쁜 선물 이었다. 또한 그가 평생 동안 이루고자 하였던 일과 꿈을 되 돌아 보면 이렇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꿈을 가진 인물이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 암울한 시기에 이종욱 박사의 활약상은 어두운 가운데 비추는   한줄기 서광 처럼  희망을 주었고 큰 힘이 되었다. 이종욱박사의 급작스런 서거의 소식을 듣고는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는 때론 하늘에서 특별한 사명을 주어 내린 사람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훌륭한 사람으로 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하며 사랑을 나누는 삶을 실천해 나가게 되기를 염원한다. 이종욱 박사의 많은 업적중 1995년 WHO 백신국장 재임시 세계인구 1만명당 1인이하로 소아마비 유병률을 떨어뜨리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펼쳐 "백신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이후 소아마비 발병률이 제로에 가까워지는 기적으로 이어진다.   저개발 국가의 결핵 퇴치 사업과 에이즈 퇴치에도 혁혁한 성과를 이룬다. 이종욱 박사가 남긴 말을 나눈다.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여전히죽지 않아도 될 병으로 고통받고 죽어 갑니다. 고귀한 목표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미래이고, 희망인 아이들에게 목숨을 잃거나 다리가 마비되는 고통을 줄 수는 없습니다" " 누군가 그 일을 해야 하고, 우리가 바로 그 누군가 입니다." " 옳다고 생각하면 행동하라."                                    

비트코인이나 주식투자에 빠진 청년들

요즘 청년들이 직장을 얻기가 힘들뿐 아니라 직장을 가진다 해도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자기집 마련이 불가능해져서 비트코인이나 주식투자로 큰 돈을 쉽게 벌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정력을 쓴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불안한 고용과 높은 집 값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아예 기피하게 되고, 결혼을 한 가정도 자녀 양육과 사교육에 따르는 고비용으로 출산을 기피한다고 한다. 결혼 연령이 늦어지는 것과 출산율이 줄어드는 것은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지난 한세기 동안 지나친 경쟁 위주의 산업화를 추구한 결과 높은 생산성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산업사회구조는 결혼과 자녀 양육이라는 인간사회의 기본 구조를 지탱하는 고비용 구조와 이해가 상충되는 결과를 초래 하였다. 저 출산은 남자는 밖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시대에서 부부가 함께 경력을 쌓고 일하며 사회 생활을 하는 시대로 전환이 되면서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다. 일부 북유럽의 국가들은 진작부터 자녀 양육을 일부 국가가 부담하고 남자가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의식의 전환과 이를 지원하는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여 일부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국은 정부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할 성과를 얻지 못하고 급기야 출산율 2020년 기준으로 0.84로 2년 연속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한국이 유독 낮은 출산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남자도 가사와 육아에 동참하여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또한 이를 뒷 받침하는 사회적인 합의나 법과 제도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요인으로는 그간 한국 사회의 발전에 커다란 동력중 하나였던 전국민을 상대로 한 학력 학벌 시험 중심의 경쟁 체제에 대한 국민적인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으로 생각을 한다.  소위 명문 대학이나 의사나 변호사등 특정 전문 직업학교를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온국민이  

Elizabeth Keith (1887-1956) Scotland 출신의 판화작가

Image
 1920년대 일제 치하의 한반도의 다양한 풍속을 담은 판화를 남긴 작가이다. 때론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는것이 우리의 참 모습을 보는데 도움을 준다.  "내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운 좋게 머물게 된 이 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경치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집주인인 여자도 너무나 친철하다. 이 땅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이란... 별조차 새롭게 보인다.  그림 그릴 곳을 찾아 다니다가 나는 가끔 서서 이 땅의 고요함, 평화를 만끽하곤 한다." (circa 1919)

"잃어버린 세대" 어떻게 살것인가?

위기를 벗어나자면 세상이 운용되는 법칙을 알아야 하고 먼저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 가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많은 것이 주어지고 결정이 된다 .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이 정해진 환경과 일정 조건이 주어진 채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 하지만 인간은 점차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 이것은 경험을 통한 학습과 교육을 통해 습득할 수 있는 , 개인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인간에게만 주어진 기회이자 축복이다 .   어떤 조건을 가지고 태어 낳느냐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며 생각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시작은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 지배를 하지만 , 점차 나의 생각과 선택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