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오셨어요?

 

           (2017년 10월 남해의 한 식당. 멸치 쌈밥 정식)


오래 전에 재미교포사회에서 유행하던 우수개가 있다. 6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의사 내외가 70이 되어갈 즈음 여보 은퇴하면 서울 가서 살아요.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고 아름다운 자연도 구경하고..” 아내의 간청에 그럼  한달이라도 서울 가서 한번 살아 봅시다”. 휴가를 내고 서울을 방문하여 친구로 부터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 좋은 먹거리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갔다.

의사 부인: 어머, 저 굴비 좀 봐, 참 먹음직 스럽네, 이게 영광 굴비인가? 이거 한두룸에 얼마에요?

매장 점원:  70만원이요.

의사 부인:  70 만원이요? 그럼 700.. ..

굴비 10마리에 700불은 아무래도 너무 비싸서 안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려 정육부에 갔다. 노트북 보다 약간 큰  크기의 한우 갈비 한 세트가 먹음직 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와 맛있게 생겼네. 이건 얼만가? 가격표를 보니 40만원. 400.

의사부인: 여보, 아무래도 미국에서 그냥 살아야 겠어요. 우리네 형편으로는 굴비도 한우 갈비도 맘대로 못 사먹겠네요.

남편: 그러면 그렇게 해요

 

몇년 전에 오랫만에 서울을 다녀 온 친구와 식사를 했다. 서울 갈 때마다 공기가 매년 점점 더 나빠지는 것 말고는 많이 발전하고 매번 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그런데 서울가서 식당에 가면 금방 미국에서 온 줄 알아 본다고 한다. 억양이 조금 이상해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했더니 미국서 오셨어요?”라고 물어 보더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턴가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 주는 밥공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한 공기를 더 주문을 하면 돈을 더 받는 곳도 있고 그냥 주는 곳도 있다옛날에는 없어서 못 먹던 시절도 있었는데  요즘은 서울 사람들이 밥을 예전 처럼 많이 먹지 않는다고 한다. 

 

두 세해 전에 서울을 방문하여 은퇴를 하신 은사님 내외를 모시고 저녁을 하었다. 오랫만에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를 나눈다.

사모님: 그런데 있쟎아요. 우리 재벌 됐어요.

: 우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재벌이 되셨나요? 무슨 대박이라도...

교수님: … (공연히 쓸데 없는 소리 꺼냈다고 못 마땅한 표정으로 묵묵)

사모님: 아 그런것은 아니고요.. 하하.. 우리 집 값이 얼만줄 아세요?

: 아 예. 서울 집 값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30억이요?

사모님: 미국 사시면서도 비슷하게 맞추시네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60억이래요. 재개발을 한다고 난리를 치더니 몇년 사이에 그렇게 올랐데요.

: 60억이요? 진짜 재벌이시네요. 지금 사시는 아파트를 파시고 한 10억 짜리로 옮기시고 남은 돈으로 여행도 맘껏 하시면서 편하게 사시면 좋으시겠네요. (서울 사정을 잘 모르고 한 이야기다. 잘 모를땐 가만 있는게 오히려 났다).

사모님: 아니 이렇게 될 줄 누가 꿈에나 생각을 했나요. 평생 남들이 좋다는 새 아파트에 가서 한번 살아 보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재주도 없어 그냥 몇 십년 한 집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교수님 내외는 두 분 다 훌륭한 학자이시다. 특별히 재테크를 한다거나 남들 다한다는 부동산 투자도 하지 않으시고 매달 받는 월급의 범위에서 검소하고 충실하게 사시며 모범적으로 직분을 지켜오신 분들이다. 과거 큰 평수는 관리비 많이 나오고 청소 하기 힘들다고 그보다 작은 평수와 비교하여 가격 차이가 얼마 안 나던 때가 있었다. 둘다 공부를 하니 집안에 각 사람 쓰는 서재 하나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좀 큰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 하였을 뿐이다. 강남에 산다고 돈이 좀 많다고 그냥 미워 할 이유는 없다. 있는 자 없는 자 편 갈러 싸움을 시키는 것은 더더구나 좋지 않은 일이다. 다 나름 사연이 있는 법이 아닌가.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시던 내외가 갑자기 엄청난 재산세를 내야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또 재개발을 한다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40여년에 걸쳐 서재에 한권 한권 모아 놓은 책들을 옮겨 놓을 집을 찾으려니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10년 후에 서울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는 교포가 있다면 홈 리스로 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도 없고 밥 한공기 그냥 더 줄 수 없냐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영락 홈 리스가 아닌가? "밥 한공기만 더 주세요" 하면 미국에서 온줄 지레 알고 돈을 추가로 안 받고 그냥 줄까?

그럼 이제 희망이 아주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언제나 길이 있게 마련이다. 꼭 서울에서 살아야 겠다는 고집만 버리면 길은 아직 많지 않겠나서울만 그렇지 지방에 내려가면 아직도 2-3억만 줘도 살만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몇해 전 아름다운 남해 여행중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눈물이 울컥 나올 정도의 진수 성찬에 맛있는 숭늉도 공짜로 주는데 값은 10,000원을 받는다. 밥 공기도 서울 보다는 훨씬 크다. 10불도 안되는 돈으로 이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아름다운 남해에서!


(얼핏 막걸리 처럼 보이지만 숭늉이다. 이런 숭늉을 손님에게 대접하는 식당주인은 하늘에서 특별한 사명을 받으신 분임에 틀림이 없다.)




Comments

  1. 고국정서가득한글, 먹먹하기도하네요~~김박사님 건강잘챙기셔요.-한국 공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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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시대적 차이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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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주 맛있어 보이는 멸치 정식입니다.

    2년 전에 아는 분과 유럽 여행을 같이 갔을 때
    본인의 아파트가 35억이 되어서 밥 산다고 해서 모두들 축하한다고 했었는데
    그 아파트가 이제 60억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 번도 그런 가격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로써 너무 황당한 가격일 수도 있지만,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축적할 수 있는 돈의 양과,
    또, 그 돈이 강남, 서울, 수도권으로 집중적으로 투자되는 걸 보면
    강남 56평 아파트 가격이 60억이 된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요즘 괜찮은 지방은 서울/수도권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집값이 싸지 않고
    미국에서 활동하시다가 은퇴해서 한국에 역이민하면
    연세들이 많으니까 좋은 대학 병원이 가까운 곳에서 정착하길 원하시던데
    지방 중에서도 집값이 싼 지방은
    좋은 병원이나 여러 가지 인프라가 뒤 쳐저서 집값이 싼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도 여행은 가도 정착해서 살고 싶지는 않은 지역에
    굳이 미국에서 역이민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은퇴 후 고국이 그리워서 얼마 정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 년에 한 번, 한 달, 두 달 한국의 특급 호텔에 머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구경도 다니며 자유롭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좀 지루해진다 싶을 때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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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남해를 가면 꼭 맛봐야한다는 생멸치요리가 넘 맛있어 보여요.
    요즘의 부동산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허탈감만 안겨주네요.
    차곡차곡 알뜰히 저축해서 자기집을 마련할 꿈을 꿀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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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읽다가 시간가는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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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40여년 전에도 어떤 학우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돈만 있으면 한국에서 사는 게 최고라고. 돈 없어도 최고인 나라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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