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오셨어요?
(2017년 10월 남해의 한 식당. 멸치 쌈밥 정식)
의사 부인: 어머, 저 굴비 좀 봐,
참 먹음직 스럽네, 이게 영광 굴비인가? 이거 한두룸에
얼마에요?
매장 점원: 70만원이요.
의사 부인: 70 만원이요? 그럼 700불…아.. 예..
굴비 10마리에 700불은 아무래도 너무 비싸서
안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려 정육부에 갔다. 노트북 보다 약간 큰 크기의 한우 갈비 한 세트가 먹음직 스럽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와 맛있게 생겼네. 이건 얼만가? 가격표를 보니 40만원. 아 400불.
의사부인: 여보, 아무래도 미국에서 그냥 살아야
겠어요. 우리네 형편으로는 굴비도 한우 갈비도 맘대로 못 사먹겠네요.
남편: 그러면 그렇게 해요…
몇년 전에 오랫만에 서울을 다녀 온 친구와 식사를
했다. 서울 갈 때마다 공기가 매년 점점 더 나빠지는 것 말고는 많이 발전하고 매번 변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 공감을 했다. 그런데 서울가서 식당에 가면 금방 미국에서 온 줄 알아 본다고 한다.
억양이 조금 이상해서 그런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밥 한 공기 더 달라고 했더니
“미국서 오셨어요?”라고 물어 보더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 부턴가 서울에 있는 식당에서 주는 밥공기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한 공기를
더 주문을 하면 돈을 더 받는 곳도 있고 그냥 주는 곳도 있다.
두 세해 전에 서울을 방문하여 은퇴를 하신 은사님
내외를 모시고 저녁을 하었다. 오랫만에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며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나눈 대화를 나눈다.
사모님: 그런데 있쟎아요. 우리 재벌 됐어요.
나: 우아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갑자기 재벌이 되셨나요? 무슨 대박이라도...
교수님: … (공연히 쓸데 없는 소리 꺼냈다고 못 마땅한 표정으로 묵묵)
사모님: 아 그런것은 아니고요.. 하하..
우리 집 값이 얼만줄 아세요?
나: 아 예. 서울 집 값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습니다. 30억이요?
사모님: 미국 사시면서도 비슷하게 맞추시네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60억이래요. 재개발을 한다고 난리를
치더니 몇년 사이에 그렇게 올랐데요.
나: 아 60억이요? 진짜 재벌이시네요. 지금 사시는 아파트를 파시고
한 10억 짜리로 옮기시고 남은 돈으로 여행도 맘껏 하시면서 편하게 사시면 좋으시겠네요. (서울 사정을 잘 모르고 한 이야기다. 잘 모를땐 가만 있는게 오히려 났다).
사모님: 아니 이렇게 될 줄 누가 꿈에나 생각을 했나요. 평생 남들이 좋다는 새 아파트에 가서 한번 살아 보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재주도 없어 그냥 몇 십년 한 집에서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교수님 내외는 두 분 다 훌륭한 학자이시다. 특별히 재테크를 한다거나 남들 다한다는 부동산 투자도 하지 않으시고 매달 받는 월급의 범위에서 검소하고 충실하게 사시며 모범적으로 직분을 지켜오신 분들이다. 과거 큰 평수는 관리비 많이 나오고 청소 하기 힘들다고 그보다 작은 평수와 비교하여 가격 차이가 얼마 안 나던 때가 있었다. 둘다 공부를 하니 집안에 각 사람 쓰는 서재 하나씩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 좀 큰 평수의 아파트를 장만 하였을 뿐이다. 강남에 산다고 돈이 좀 많다고 그냥 미워 할 이유는 없다. 있는 자 없는 자 편 갈러 싸움을 시키는 것은 더더구나 좋지 않은 일이다. 다 나름 사연이 있는 법이 아닌가. 은퇴 후 연금으로 살아가시던 내외가 갑자기 엄청난 재산세를 내야 하는 걱정을 하게 되었다. 또 재개발을 한다고 이사를 가야 하는데 40여년에 걸쳐 서재에 한권 한권 모아 놓은 책들을 옮겨 놓을 집을 찾으려니 걱정이 태산이다.
앞으로 10년 후에 서울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는 교포가 있다면 홈 리스로 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집도 없고 밥 한공기 그냥 더 줄 수 없냐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영락 홈 리스가 아닌가? "밥 한공기만 더 주세요" 하면 미국에서 온줄 지레 알고 돈을 추가로 안 받고 그냥 줄까?
그럼 이제 희망이 아주 없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언제나 길이 있게 마련이다. 꼭 서울에서 살아야 겠다는 고집만 버리면 길은 아직 많지 않겠나. 서울만 그렇지 지방에 내려가면 아직도 2-3억만 줘도 살만한 아파트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몇해 전 아름다운 남해 여행중에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눈물이 울컥 나올 정도의 진수 성찬에 맛있는 숭늉도 공짜로 주는데 값은 10,000원을 받는다. 밥 공기도 서울 보다는 훨씬 크다. 10불도 안되는 돈으로 이런 점심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아름다운 남해에서!
고국정서가득한글, 먹먹하기도하네요~~김박사님 건강잘챙기셔요.-한국 공대장
ReplyDelete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시대적 차이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게 하는 얘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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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아주 맛있어 보이는 멸치 정식입니다.
2년 전에 아는 분과 유럽 여행을 같이 갔을 때
본인의 아파트가 35억이 되어서 밥 산다고 해서 모두들 축하한다고 했었는데
그 아파트가 이제 60억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한 번도 그런 가격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로써 너무 황당한 가격일 수도 있지만,
세계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축적할 수 있는 돈의 양과,
또, 그 돈이 강남, 서울, 수도권으로 집중적으로 투자되는 걸 보면
강남 56평 아파트 가격이 60억이 된다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요즘 괜찮은 지방은 서울/수도권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집값이 싸지 않고
미국에서 활동하시다가 은퇴해서 한국에 역이민하면
연세들이 많으니까 좋은 대학 병원이 가까운 곳에서 정착하길 원하시던데
지방 중에서도 집값이 싼 지방은
좋은 병원이나 여러 가지 인프라가 뒤 쳐저서 집값이 싼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도 여행은 가도 정착해서 살고 싶지는 않은 지역에
굳이 미국에서 역이민해서까지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은퇴 후 고국이 그리워서 얼마 정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일 년에 한 번, 한 달, 두 달 한국의 특급 호텔에 머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구경도 다니며 자유롭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 후
좀 지루해진다 싶을 때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남해를 가면 꼭 맛봐야한다는 생멸치요리가 넘 맛있어 보여요.
ReplyDelete요즘의 부동산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허탈감만 안겨주네요.
차곡차곡 알뜰히 저축해서 자기집을 마련할 꿈을 꿀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래요.
귀한글 감사드립니다. 읽다가 시간가는줄 모르겠네요
ReplyDelete40여년 전에도 어떤 학우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돈만 있으면 한국에서 사는 게 최고라고. 돈 없어도 최고인 나라가 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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