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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ne, 2021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열린 사회의 적들 John Dewey (1859-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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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터넷 켑쳐) 현재 미국 공교육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지난 한세기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원에 공교육 저변에 깔린 정신과 철학이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런면에서 미국 교육의 근간을 세운 교육 철학 사상가인  John Dewey 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인생이란 긴 과정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 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의 학교의 교육 목표는 어떠한가? 한국의 학부모들의 입을 빌리면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부이며 학교에서는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숫자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한다. 정규 교육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학생들은 방과후 사교육을 통하여 암기 위주의 입시 준비로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놀라운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더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학생들은 부모의 지시에 순종하며 잘하든 못하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교육이 급격한 경제 성장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미국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입학은 고교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 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졸업은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받았을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대학 졸업장만으로 평생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니다. 하바드대를 나와도 졸업장은 평생 자기 집 벽에 걸어 놓을 수 있지만 약발은 3년 밖에는 안간다. 3년이 지난 후에는 졸업 후 3년간의 업적을  보여주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고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 시절에는 평범했으나 사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Ronald Reagan (1911.2.6 - 200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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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40 대 대통령 1981-1989,  사진 USA Today ) 밝고 기운찬 사람은 주변을 환하게 변화 시킨다. 레이건은 지치고 어리둥절해 있는 국민들을 추스르고 때론 유머로 때론 힘든 결단으로 미국을 이끌어 나간 지도자다. 그는 미국과 미국시민을 사랑한 애국자 였다. 각료 회의에서 시작할때 몇 마디만 하고 회의 내내 잠을 잔다고 레이건 대통령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레이건은 이런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어려운 이야기 오래 더 들어봐야 이해를 못하니 각료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중요한 사안을 일임한다고 대답하였다. 민주당은 레이건을 이혼한 경력이 있고 이름도 없는 대학을 나온 2류 배우 출신이라고 전혀 미국적이지 않은 프레임을 씌어 집요하게 공격을 했다.  레이건은 소위 동부의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즐비한 민주당의 엘리트들의 눈에는 얼뜨기 배우에 불과 하였다. 레이건은 이러한 조롱에 일일이 대응하기 보다는 의연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레이건은 압도적인 표차로 현직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하는 지미 카터를 누루고 69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취임을 하게 되고 74세의 나이에 재선에 성공한다. 레이건 집권 말기 국민의 지지도가 63%에 이르렀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초당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준다. 하바드 출신의 정형외과 의사이자 골수 민주당원인 친구 George는  "우리는 레이건을 과소 평가했다. 그가 8년간 California주지사를 하며 국가를 운영할 만한 충분한 경험을 쌓았다는 점도 간과 했다. 레이건 재임중 세금 감면 정책과 탈규제 정책은 미국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가 Russia와의 오랜 냉전을 끝내고 베를린 장벽을 결국 무너 지게 한 역할은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라고 민주당원으로서는 최고의 점수를 준다.  하지만 George는 "감세 정책이 경제를 부흥시키고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았지만 현재 미국 사회가 안고 있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 Angela Merkel (1954.7.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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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인터넷 캡쳐) 세상에는 맑고 밝은 기운을 주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따듯하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고 생각이 반듯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 사람은 마음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목사인 아버지로 부터는 기독교 신앙과 봉사정신을, 라틴어와 영어 교사인 어머니로 부터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가정에서 배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가정에서 부터 쌓아온 것이다. 물리학을 연구하던 젊은 앙겔라 메르켈을 정치의 길로 인도한 당시의 지도자는 메르켈의 어떤 모습을 보았을까? 과학을 공부한 사람 특유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문제 해결 태도를 보았을까? 메르켈은 정부의 여러 요직을 거치는 훈련 과정을 통하여 공동체의 안정, 번영과 행복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서의 권력의 중요성을 잘 인지하게 된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개인적으로 메르켈의 위대함은 낮에는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과 국가에 헌신하고, 일과 후에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와 동등한 시민으로서 자신과 가정을 충실하게 지킨데 있다고 본다. 메르켈은 "권력은 부패한다. 완전한 권력은 완전히 부패한다"라는 말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르켈이 권력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오랫동안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부모로 부터의 교육, 타고난 개인적 인성과 메르켈을 둘러싼 사람들의 높은 시민 정신의 산물이 아니었겠나 생각한다. 메르켈의 성공 신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메르켈이 역사속에서 다시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반대하는 사람들과 독일 시민들, 세계의 지도자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메르켈의 모습은 내 가슴속에 오랫동안 잊혀 지지 않을 것이다.   메르켈에게 경외와 찬사를 보낸다. 메르켈이 시민을 위해 일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준 독일 시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Nelson Mandela (1918.7.18 - 2013.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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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년 대통령이 된 후 27년 수감 생활중 17년을 보낸 South Africa의 Robben Island 에 있는 감옥을 다시 방문하여 감회에 잠겨 있는 넬슨 만델라. 사진: Getty Image. LA times 사진 캡쳐) 넬슨 만델라의 위대함은 그가 한나라의 대통령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기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감옥에 갇혀 매일 반복되는 중 노동을 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정신적 유대를 강화한다는 이유로 노래도 함께 부를 수가 없었다. 매일 돌을 깨는 노역과 동일한 일상이 27년간 계속된다. 음악을 들을 수도 노래를 부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살았지만 "사람에 의하여 억압받지 않는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온 갖 어려움을 견뎌냈다. 그는 자신을 27년 이란 오랜 세월동안 감옥에 갇히게 만들었던 부당한 사회의 제도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출감 후 남아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어서 그는 복수의 심정으로 백인이나 정치적으로 이견을 달리 했던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과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비 인간적으로 대우 하였던 간수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하였다.    (만델라가 지냈던 감옥의 내부. 사진; 위키피디아 캡쳐) 어떤 일을 이루자면 여러가지 도구와 환경이 필요하다. 큰 사상의 탄생에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감옥에 갇히기 전에는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만이 백인 우월주의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였으나 27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나온 만델라는 문제 해결 수단으로 "화해와 연대 (reconciliation and unity)" 를 선택한다.   나는 거리를 거닐 수도 있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넬슨 만델라를 생각하며 누구나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이 평범한 자유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만델라의 어록을 나눈다. "나는 평생 백

아메리칸 드림과 이종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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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n Art Museum. Chong 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and Culture,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 있는 미국 최대의 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Asian Art Museum 의 정면 벽에는 Chong 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and Culture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미국에는 큰 돈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을 건물에 부치는 전통이 있다. 이종문 회장은 1994-95년 두해에 걸쳐 재정상 위기에 빠진 아시아 박물관에 1600만불을 기증하여 현재의 위치에 박물관을 세우는데 종자돈을 댔다. 미국의 공공 건물에 이름을 새긴 최초의 아시안이며 한국인이란 기록을 세웠다. 사람이 큰 일을 하자면 우선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마음을 다시 부여 잡고 일어서게 하는 내적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종문 회장은(1928 -  ) 국립 중앙도서관 사서관과 연세대 강사등을 지내다가 1975년 47세의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으로 돈을 번다. 더 큰 돈을 벌려면 전자사업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54세의 나이에 실리콘밸리에 뛰어 들어 사업을 벌이다가 가진 모든 것을 잃고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렇게 이국땅에서 죽을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 잡고 기사 회생을 한다. 마침내 사업에 성공을 하여 얻은 부를 마치 이런 날을 오기를 기다려 왔던 사람처럼 지체없이 사회에 기부를 시작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종문 회장의 말을 나눈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존경을 받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하다고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돈만 쫓다 망한 사람들이 많다. 기업인은 재물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미국에 아시아를 올바로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미나리와 한국인 2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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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출연배우/경향일보 캡쳐/판 시네마 제공) "자녀 교육"이 미국 이민의 중요한 이유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자녀들이 더 나은 환경속에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최근들어 "미세먼지"가 이민을 고려하는 두번째 요인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공기가 나빠서 숨쉬기가 힘들어 고국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자녀 교육 문제까지 겹쳐 이민이라는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옮기는 엄청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의 이민은 60-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오랜 가난을 털고 너도 나도 잘 살아 보자고 힘써 일을 할 때 어떤 이 들은 더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태평양을 건넜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들의 자식 농사의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수십년전 한국을 떠나면서 품었던 소박한 꿈이 자식들을 통해 이루어 졌을까?   얼마전 미나리란 영화로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에 대해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서양식 교육을 잘 받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엄청나게 멋진 명품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란 호평을 하였다. 똑똑하고 따듯하고 정이 많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할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머리가 좋고 열심히 일을 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미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좋은 이미지이다. 타문화를 수용하는 능력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리더쉽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정이삭 감독은 한때 의대 진학을 꿈꾸었다가 영화가 좋아 영화감독이 된 사람이다.  빠친코란 작품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민진 작가도 부모의 꿈을 따라 엉겹결에 변호사가 되어 일을 하다가 자신의 꿈을 좇아 중간에 작가로 인생 전환을 한 사람이다. 부모들은

한옥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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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 년 10월 촬영) 주변 자연경관에 어울리게 잘 지어진 한옥은 보는 것 만으로도 큰 기쁨과 평안을 준다 . 평상에 앉아 낮으막한 동산과 정원을 내려다 보면서 차를 마시고, 따듯한 온돌에 돌아 누워 등을 데우면 이세상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 ? 이제는 너도 나도 한옥이 무척 아름답다고 자랑을 하지만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취급을 한 적이 있다 . 한옥이 각광을 받게 된데에는 사람들의 안목이 바뀐 탓도 있지만 젊은 건축가들의 상상력이 큰 몫을 했다 . 늘 문제가 되었던 불편한 난방 , 부엌 , 화장실을 멋지게 현대식으로 고치고 나니 한옥은 보물이 되어 새로 태어났다 . 안타깝게도 한국을 대표할 만한 고풍 스러운 한옥이 이미 하나 둘씩 사라져 이제는 거의 찾아 보기 어려워졌다 .  현대식 아파트가 마치 우리의 대표적인 건축 양태인 것처럼 잘못 알려 지고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  답답한 아파트 보다  자연과 잘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한옥에서 아이들이 성장한다면 인성과 지능의 발달에도 더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제대로 된 한옥을 짓자면 돈도 많이 들고 , 풍수 좋은 터에 넓은 땅도 있어야 하고 , 고급 자재와 재료를 다룰 줄 아는 목수와 장인도 있어야 하니 이 모든 것을 다 갖추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마음에 드는 한옥은 돈과 마음만 있다고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 지금은 나무와 공구를 다룰줄 아는 목수나 장인을 찾기가 힘들어 더 더욱 어려워졌다.    그럼 이젠 아름다운 한옥을 가지기는 다 틀렸다는 말인가 ? 어렵지만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  모처럼 고국을 방문하여 산세에 잘 어울리게 지어진 아름다운 한옥을 방문한 적이 있다. 250년된 한옥을  진주 에서  전주 지역으로 옮겨서 지은 한옥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문뜩 경외감마저 든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에 아랑곳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