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와 한국인 2세들

 

(사진.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출연배우/경향일보 캡쳐/판 시네마 제공)


"자녀 교육"이 미국 이민의 중요한 이유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부동의 1위를 차지한다. 자녀들이 더 나은 환경속에서 풍요롭고 건강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최근들어 "미세먼지"가 이민을 고려하는 두번째 요인이라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공기가 나빠서 숨쉬기가 힘들어 고국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자녀 교육 문제까지 겹쳐 이민이라는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옮기는 엄청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으로의 이민은 60-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오랜 가난을 털고 너도 나도 잘 살아 보자고 힘써 일을 할 때 어떤 이 들은 더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용감하게 태평양을 건넜다. 어느덧 세월이 지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들의 자식 농사의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수십년전 한국을 떠나면서 품었던 소박한 꿈이 자식들을 통해 이루어 졌을까?  


얼마전 미나리란 영화로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씨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에 대해  "한국인의 피를 가지고 서양식 교육을 잘 받은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엄청나게 멋진 명품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란 호평을 하였다. 똑똑하고 따듯하고 정이 많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일을 할때 상대방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보고 말하는 것일 것이다. 


한국인들이 머리가 좋고 열심히 일을 하는 민족이라는 것은 미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정형화된 좋은 이미지이다. 타문화를 수용하는 능력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리더쉽이 부족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함께 가지고 있다. 


정이삭 감독은 한때 의대 진학을 꿈꾸었다가 영화가 좋아 영화감독이 된 사람이다.  빠친코란 작품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이민진 작가도 부모의 꿈을 따라 엉겹결에 변호사가 되어 일을 하다가 자신의 꿈을 좇아 중간에 작가로 인생 전환을 한 사람이다.


부모들은 죽어라 일하면서 자식들 뒤바라지를 하여 자식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는 많은 한국인 부모의 정형화된 공식을 깨고 자신의 꿈을 따른 사람들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부모들의 생각도 차츰 변하고 있다. 직업이나 삶에 대하여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부모의 꿈과 2세들의 꿈이 궁극적으로 이 사회에 어떤 결과를 맺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며 현재 진행형이다.


명품의 종류는 사람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여 우열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하지만 명품의 참된 가치는 "함께 잘 살아라"라는 코드가 있느냐로 판명할 수 있지 않을까?


                                                                            YHK








Comments

  1. 얼마전 미나리 영화를 보고 짙은 여운에 한참동안 영화관 자리를 뜰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운을 이어가고 싶어 바삐 '파친코'를 읽기 시작했지요. 이민진이란 작가가 무척 궁금했어요.
    결코 쉽지 않은 이민생활, 자식의 성공에 모든걸 쏟아부으며 희생의 고단한 시간들을 기꺼이 해내는 이민 1세대님들께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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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전에 신문에서 내 자식은 이런 사회에서 살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이민가셔서 자식들에게 새 세상을 주려고 새땅에서 온갖 궂은일 마다하지 않으시고 희생하신 이민하신분의 사연을 본적이 있어요.
    정이삭감독님 부모님 이야기를 들으니 문득 예전에 본 기사가 생각이 나네요.
    이민결심하신 부모님들도 대단하시고 , 오직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시는 모든 부모님들께 가슴깊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드네요.

    제가 한걸음이라도 좋은부모 가까이 라도 가고있는지...
    좋은환경 좋은생각 좋은 것만 주고싶은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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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미나리 감독의 성공스토리가 감동적입니다. 의인의 길을 마다하고 예인의길로 들어서는 것이 상식을 뛰어 넘기에, 정감독의 성공을 사회적 공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요. 뛰어난 예능적 재능이 있어야 하는데 정이삭 감독은 그 재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 같습니다. 변호사에서 소설가로 변신하여 성공한 파친코 작가의 얘기도 흥미로워요. 교수님은 어떤 변신을 꿈꾸시나요? 맛갈나는 얘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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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정이삭 감독은 의대를 다니다가 영화 감독이 된 게 아니고
    학부에서 Biology 를 전공 했고, 학부 졸업하고 대학원을 영화 전공을 했어요.
    농장주가 꿈이었던 아버지와 정이삭 감독의 어렸을 때 모습을 반영해서 영화 미나리를 만들었다는데,
    정이삭 감독 부모는
    미국의 대부분의 교포들 처럼 한국 사람들이 몰려있는 한인 타운에서 노동을 하지 않고
    농장주가 되는 꿈을 안고 알칸소주로 이사가서 정착하셨다고 하니
    아버지 때 부터 남다르고 창의적이셨던 것 같고,
    그런 환경에서 자란 정이삭 감독은 돈을 벌거나 성공해야된다는 급한 마음 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고 행복해지는 거를 꾸준히 함으로써
    오늘날 미나리라는 영화가 탄생되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의사, 변호사가 되는 것도 훌륭하고,
    본인의 재능과 열정에 따라 여러가지 다양한 직업을 갖는 것도 좋고, 삶은 공식이 없는 것 같아요.

    살아있는 동안 본인이 하고 싶은 즐거운 것들을 많이 하면서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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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른 지적 감사합니다. "의대를 다니다가"를 "의대 진학을 꿈꾸었다가" 로 정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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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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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부모의 재산이 자식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지표가 한국은 크게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온 표를 봤어요.

    그래서 그런지, 한국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살면 그것이 결실이 될 것이다라는 믿음 같은게 있는 것 같아요. 부모들의 교육열도 그렇고.

    부모로서 살아가면서 삶이 점차 나아져가도 내 세대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내 자식 세대에서 이루게 해줘야한다는 것이 부모가 생각하는 가장 큰 선물인 것인가 봐요.

    이제는 우리 부모들도 생각을 조금 바꾸어, 자식이 느껴야 할 삶의 가치가 내가 물려주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식 스스로가 찾는 것에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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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나는 뼈속까지 토종이고 토속적인 것이 좋아서 이민한 사람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도덕경에서도 죽을 때까지 다른 지방에 가보지도 알지도 않는 삶을 예찬했던 걸 읽은 기억이 나는데, 나이 들수록 엄마 품과 같은 고향의 품속을 떠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죠. 향수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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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This reminds me about some of my 2nd or 1.5 generation Korean immigrant classmates in school. Taiwanese immigrants also have similar situations as well (including myself as a 1.5 generation Taiwanese immigrant in the US, thinking back about my parents' experience in the past and having kids in the future). Thank you for your insightful post. I will definitely put “Minari” in my movie list. Koreans are indeed very hard working and talented.----A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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