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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wing posts from July, 2021

Harlem Public Library 과다한 경쟁적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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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1 West 124 th  Street, the Harlem Branch of the New York Public Library) Thomas Sowell (1930-  )은 Stanford 대학 Hoover Institute의 경제학자이다.  Sowell은 North Carolina의 흑인 집단 거주지역에서 태어나자 마자 친적에게 입양이 되어 살다가 1930년대 당시 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주하는 흑인 이주 바람을 타고 뉴욕으로 이주했다. Thomas 집안에는 공부를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주위에 살던 Eddi Mapp이란 사람을 알게 되고, Eddi는 9살의 Thomas를 Harlem에 있는 Public Library에 데려가 책을 찾고 빌리는 법 등을 가르쳐 준다. 당시 Harlem Public Library에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책과 미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타고 올라 갈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이 있었지만, Harlem지역에 사는 흑인 중 도서관을 활용한 사람은 많지 않았고 유독 유대인들만이 도서관의 혜택을 보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Public Libarary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오늘의 자신의 모습은 찾아 보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또 당시 Harlem의 공교육의 수준은 지금보다 월등히 좋았다고 한다. 현재의 도심 빈민 지역의 공 교육은 80년전의 Harlem만도 못하다고 하며 "이렇게 형편없는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로 부터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고 한탄을 한다. Sowell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다가 한국전에 사진병으로 참전을 한다. 의무 기간을 마치고 돌아와  워싱턴에서 낮에는 일을 하고 야간에 Howard College에서 공부하던 중 높은 학업 성취도를 보여 교수들의 추천으로 하바드대학에 입학을 하게 되고 이후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여 학문의 길에 들어선다. S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Margaret Thatcher (1925.10.12 - 2013.4.8), British Prime Minister (1979-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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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rgaret Thatcher, 사진 Getty Image/인터넷 켑쳐) Margaret Thatcher (마가렛 대처)는 지도자의 신념과 자질이 국가의 흥망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가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대처는 신분 사회이자  철저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작은 식료품점을 하는 집안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부친으로 부터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야 하고 또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난관이나 비난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정신 교육을 철저히 받으며 장차 영국을 뒤 흔들 위대한 정치가로서의 자질을 가정에서 부터 양성하게 된다. Oxford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지만 보수당 청년위원회 활동을 하였고,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24세의 나이로 비록 낙선을 하였지만 지방의회 선거에 출마를 하여 일찌감치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의회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하는가운데 결혼을 하고 법률을 공부하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1959년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성한다. 그후 내각과 정치인을 오가며 미래를 준비 하게 된다. 교육부 장관 재임시에는 정부 재정 긴축을 위해 7-11사이의 아동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던 우유 급식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려 언론으로 부터 "우유 도둑"이란 명칭을 얻게 되고 동시에 "영국에서 가장 인기없는 여성"이란 비야낭을 듣기도 한다. 대처는 남성 중심적인 정치판에서 1970년대 초 "여자가 영국에서 수상이 되는 일은 내 생애에 절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였지만 1975년 보수당 당수가 되고 1979년 영국수상으로 취임을 하게 된다. 수상으로 취임할 당시 영 국의 최대 현안은 추락하는 경제였다.  영국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로 어떤 정치인도 손을 대기 싫어 하는 막강하고 오만한 탄광 노조와 한판 승부를 벌여 노조를 와해 시키고  국민의 세금만 축내면서 경쟁력을 키우지 않고 방만한 경영을 하던  공기업을 차례로 민영화

Claude Levi-Strauss (1908.11.28 - 2009.10.30), "슬픈 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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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Praemium Erasmianum Foundation 홈페이지) Claude Levi-Strauss 는 지구가 둥글다라고 말한 Copernicus에 비견되는 인류학자이다. Levi-Strauss 는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하고 Secondary education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중 1935년 프랑스 정부에서 공모한 문화 사절단에 막차로 지원하여 방문 교수 자격으로 브라질 Sao Paulo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친다. 브라질에 체류하는 4년의 기간동안 사절단의 일원이자 인류학 교수인 부인과 함께 아마존 원주민이 사는 지역을 방문하며 연구를 진행한다. 실제 아마존 원주민과 함께 산 기간은 몇 날에 불과하였지만 지속적인 탐방 연구를 통해 지식을 축적한다. 여행중 부인이 눈병을 얻어 연구 수행이 어려워지자 인류학적 연구의 사명을 떠안게 된다. 전문적인 고등 교육을 받은 유럽인이 아마존 원주민의 삶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며 연구한 학자는 이전에 없었다고 한다. Levi-Strauss 는 인류학에 대한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정식으로 인류학 교육을 받은 부인으로 부터 간접 교육을 받아 오히려 인류학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도그마에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지 모른다.  브라질에서의 4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와 소르본 대학에서 잠시 근무를 하던 중 1941나치와 불란서의 비시정부의 (Vichy France)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한다.  미국은 1930-40년대에 걸쳐 유럽의 박해 받는 지식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였다. 특히 뉴욕은 구대륙과 신대륙의 다양한 분야의 지성의 만남이라는 실험장이 마련된다. 뉴욕에 자리를 잡은 Levi-Strauss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Roman Jacobson이란 언어학자를 만나 Structural Languages에 대해 배우고 그밖에 많은 지식인들과 교류를 통해 인류학에 구조주의 기법을 도입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1948년 다시

지금 우리는 어디에 서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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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War Memorial, Westborough, MA) 모든 정치적인 결정의 마지막에는 결국 무고한 일반 시민이 그 대가를 몸으로 지불하게 되어 있다. 국가의 운영을 위임 맡은 정치인과 관료들이 결정을 내리지만, 값은 일반 시민이 치룬다. 작은 결정들이 쌓여 거지 국가로 전락하기도 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기도 한다. 그 결정이 자의든 타의든 전쟁인 경우 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의 목숨이 헛되지 않게 국가가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하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추모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에게 대한 고마움을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죽은 병사들에게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랄뿐일 것이다. 미국을 여행하다 보면 많은 도시에 1차대전, 2차대전, 한국전쟁에 참전을 하였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보게 된다.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어떻게 추모하고 대접하는 가를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우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쓰다가 목숨을 잃은 순국 선열들을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으로 추모를 하고 있는가? 이국땅에서 목숨을 잃은 수 많은 미국인을 포함한 우방의 친구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추모 하고 있는가? 현재 우리의 삶과 경제적인 번영이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덕택이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하는 가운데 나타난 분배의 불균형과 같은 여러 폐해로 국민이 분열이 되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도자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경제가 파탄이 나서 거지가 되어 온 국민이 길거리에 나가 앉거나 심한 경우 나라를 잃고 나서 노예 생활을 할 때 알게 될 것이다. 역사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