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사람, 이태석 신부 (1962.10.7 - 2010.1.14)

 



          (이태석 신부. 사진 인터넷 켑쳐)


사람은 어떤 꿈을 꾸느냐에 따라 모짜르트가 되기도 하고 히틀러와 같은 괴물이 되기도 한다.


이태석 신부는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운 홀 어머님 밑에서 경제적으로 궁핍한 환경속에서 자라면서 의사가 되기를 꿈 꾸었다.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중에는 또 신부가 되기를 꿈꾼다. 의사가 된 뒤에 신부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결정이 아니다.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의사와 신부 수련을 마치고, 하고 많은 가운데 아프리카로 가서 활동하기로 결정한다. 쉽지 않아 보이는 결정들을 주저없이 내리고 실행에 옮긴다. 꿈을 꾸는 사람은 있어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병든 사람이나 목자를 구하는 영혼들은 세상 어디에나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구지 아프리카에 가서 의사나 신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었일까?

"신부 수업중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 지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제가 많은 것이 부족하지만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라고 대답한다. 어떤 위대한 행위도 동기는 아주 소박한 경우가 많다.

아프리카는 인구 비례로 의료진의 비율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 간단한 진단과 치료만 하더라도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매일 매일 죽어가고 있다. 그런면에서 이태석신부가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은 아름다운 결정이자 진실을 외면하지 않은 용기있는 결정이기도 하다.

이태석 신부가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하자 멀리서 2-3일 동안 걸어서 와서 진료를 받는 사람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는 세상에서 받은 것이라곤 멸시와 아픔밖에 없는 한센인에게 찾아갈 때는 뭐라도 작은 선물을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가 한센병환자의 발에 맞게 직접 고안하여 만든 신발. 사진 인터넷 켑쳐)


이태석 신부는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브라스 밴드를 결성하여 아이들에게 직접 악기를 가르친다. 작은 몸 하나를 조금도 아끼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다 하였다.

병원보다 학교를 먼저 세운 이유에 대해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학교를 먼저 세우셨을것 같다 " 라고 대답한다.


      (이태석 신부가 35명의 톤즈의 아이들을 모아 만든 브라스 밴드, 사진 인터넷 켑쳐)


"처음에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이 있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태석 신부는 무엇하나도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는 열악한 환경속에서 처음에는 물질적으로 채워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사랑과 관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잠시 한국을 방문한 길에 아무런 증상도 없는 상태에서 주위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그냥 한번 받아본 건강검진 결과 전혀 생각지도 않게 말기암이란 진단을 의사로 부터 들었을때 어떤 생각이 들까?


말기암이란 말을 듣고 이태석 신부의 첫 반응은 "어 아픈사람들이 더 있고 톤즈에 돌아 가야 하는데" 였다고 한다.


       (이태석 신부와 톤즈의 아이들사진 인터넷 켑쳐)


이태석 신부는 아주 작고 단순한 것에도 행복해 하고 감사해 하는 아이들을 볼 때 커다란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혼자 사는 것이 외롭지는 않는냐는 질문에는 "외로울 틈이 없어요" 라고 답한다.


이태석 신부가 가고, 톤즈의 한 여인은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인데, 하나님은 이신부님 대신에 저를 데려가셨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린다.


이태석 신부의 짧은 생을 통해 보여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은 믿고 본 받을 만한 위인이 부족한 한국인에 희망의 서광으로 비춰진다.


이태석 신부의 어록을 나눈다.


" 가장 보잘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쳐 박사, 어릴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다"



YHK







Comments

  1. 진정한 예수님이 우리 곳곳에 계신거 같습니다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데 신부님갵은 분들 때문에 사랑과 관심이 많이 퍼질수 있었으면 합니다 아침일찍부터 행복한 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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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태석 신부님이 하늘에서 이 글을 보시고 좋아하실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담백하게 알리고
    그 분이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셔서요. ^^
    마음에 온화함이 깃들게 해주신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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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는 이태석신부님께서 톤즈에서 의사로 신부로 활동을 한창하실 때 부터 후원을 했었기 때문에
    대장암 치료받으시며 너무 야위신 모습의 사진을 보았을 땐 너무 안타까웠고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슬프고,
    나중엔 수단의 정치인들에게 너무 화가 났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정치를 그모양으로 해서 나라를 그렇게 가난하게 만들어놓아갖고
    그렇게 재능있고 똑똑하고 노래도 잘하시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인류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분을
    톤즈의 그 가난함에서 발을 못 떼고 눌러앉게 해서 결국은 본인의 건강조차 챙기지 못하고
    일찍 하늘나리로 가게 하셨나 하는 원망이 생기더군요.

    아프리카 도시들은 모두 멀쩡하게 서양의 도시들 처럼 잘 발달해 있는데
    왜 유독 TV에서는 돈만 노리는 사이비 자선단체들이
    전기도 물도 안 들어가는 그런 아프리카의 오지 중의 오지에 사는 비참한 모습의 사람들만을 촬영을 해서
    후원금을 구걸하고 봉사를 아프리카로 가게 만드는 건지,
    가난은 이태석신부님 같은 개인이 구제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국민이, 정치인이, 국가 전체가 변하지 않으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까지 했었습니다.

    생각은 그렇게 회의적이 됐어도 , 그냥 하던 습관대로, 기계적으로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후원을 해왔고
    국경없는 의사회, 세계식량기구, 유니세프, 여러 대학들에 도네이션은 정기적으로 해왔지만
    이런 도네이션들이 제대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전달이 되는지
    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건지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태석신부님이 세상을 떠나신 이 후에도 너무도 많은 좋은 분들이 계속 후원을 한 덕분에
    이태석 신부님의 제자들은 훌륭한 어른이 되어 여러 분야에서 활동을 하게 되고
    그 중에 45명이 의사가 되어 많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태석신부님의 사랑이 핫되지 않고 한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이렇게 많은 열매을 맺는구나 하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회의감을 갖고 있던 제 자신이 창피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지역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항상 감사드리고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응원을 하고 있고
    이태석 신부님처럼 자신을 버리시고 희생하시는 많은 분들 때문에 세상이 점점 나아진다고 믿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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