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원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원은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우주의 경계이다. 그림 Ethan Segal. 인터넷 캡쳐) Observable Universe 란 말 그대로 지구를 중심으로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를 말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의 끝이 거리로 따지면 460억 광년이라고 하니, 빛의 속도로 460억년을 가야 도달 할 수 있는 먼 거리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저 너머에 또 우주가 전개 되어 있을 것이므로 보이지 않는 우주 저너머에는 무었이 있는지 도무지 끝이 있기나 하는 것인지 궁금하긴 하나 해답은 각자의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다. Observable Universe 안에는 2021년에 내린 계산에 의하면 Galaxy가 4조개가 들어 있다고 한다. Galaxy 라 함은 여러 항성과 성단 성운들이 모여 있는 커다란 집단을 말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있는 태양계는 Milky Way Galaxy (은하수) 의 변방에 위치한다고 한다. (몽고의 고비사막에서 본 Milky Way Galaxy. AMR photography.인터넷 캡쳐) 어려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늘 나라는 어디쯤에 있을까 생각을 하며 한숨을 쉬던 생각이 난다. 방대한 우주의 크기와 시간에 비해 인간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고 평생 분주하게 뛰며 애를 써도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매우 제한적이다. 사람은 죽어서 한줌의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먼지가 되어 우주로 흩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우연히 지구 한구석에 던져져 무의미하게 불확정성의 법칙에 의거하여 진동하는 원자의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험에 입각하여 인간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얕은 지각의 한계안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육신이 죽은뒤 부활하여 영생을 얻어 천국으로 간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시련과 고통을 불쌍히 여겨 위로하는 마음으...
(사진. 인터넷 켑쳐) 현재 미국 공교육에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지만 지난 한세기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원에 공교육 저변에 깔린 정신과 철학이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런면에서 미국 교육의 근간을 세운 교육 철학 사상가인 John Dewey 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학교 교육의 목적을 "인생이란 긴 과정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학습하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것" 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의 학교의 교육 목표는 어떠한가? 한국의 학부모들의 입을 빌리면 입시위주의 교육이 전부이며 학교에서는 이름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숫자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고 한다. 정규 교육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학생들은 방과후 사교육을 통하여 암기 위주의 입시 준비로 노예 아닌 노예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부르는 놀라운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 온 국민이 더 잘 살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자식 교육에 모든 것을 걸고 학생들은 부모의 지시에 순종하며 잘하든 못하든 열심히 공부를 하였다. 교육이 급격한 경제 성장의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녀들의 교육을 중요시 여기는 것은 미국의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명문 대학의 입학은 고교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 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졸업은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기 위한 준비를 잘 받았을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대학 졸업장만으로 평생 신분이 결정되는 사회가 아니다. 하바...
독립운동가, 사상가, 언론인, 의사. 서재필박사는 18세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를 하고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어 일본에서 1년간 군사교육을 받고 정부의 관료로 경력을 시작한다. 1884년 12월4일 갑신정변에 가담하였으나 3일만에 정변에 실패하여 정변에 참여하였던 많은 사람들이 참살을 당하게 되고 하루 아침에 역모자의 신분이 되어 일본을 거쳐 1885년 미국 Sanfrancisco에 도착하여 21살의 나이에 망명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같이 망명을 왔던 박영효, 서광범은 혹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 갔고, 서재필 혼자 남아 낮에는 막노동을 하며 야간에는 기독청년회에서 YMCA 영어 공부를 하였다. 1년이 지나 John Hollebeck 이라는 독지가의 도움으로 1886년 6월 Philadelphia에 있는 명문 고등학교인 Harry Hillman Academy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1888년에는 George Washington대학의 전신인 Columbian대학의 예과를 거쳐 1889년 9월 정식으로 의과대학 야간부에 입학을 하게 되고 1892년 28세의 나이로 의과 대학을 졸업하여 한국 사람 최초로 미국 의학사 학위를 받아 의사가 된다. 망명 11년만인 1895년 일시 귀국을 하여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아 일을 하기도 하였으나 여러 사정으로 1898년 다시 도미를 하였고, 이후 사업을 벌여 크게 성공을 하고 미국에서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독립운동에 몰두 하느라 잠시 사업을 등한히 한 탓으로 60이 다된 나이에 사업의 완전한 실패를 겪게 되고 사업으로 재기할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고전을 하던중 1926년 20여년간 떠나 있었던 의사의 일을 다시 하기 위해 63세의 나이에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3년간 의학보수 재교육을 받고 의사의 길로 다시 들어서 남은 생은 의사로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돕는다. 서재필은 출중한 지력과, 인격, 성실성, 애국심이 있었지만 세상의 커다란 변혁기에 태어나서 ...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는 청년들에게 경험이 많은 앞서 간 분들의 이야기들이 큰 도움이 되겠어요.
ReplyDelete이런 소중한 장을 마련해 주셔서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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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lyDelete나이를 먹음에 불안한 것은 아직 젊은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이 생각하고 공부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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